번역이란 실로 디테일한 작업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A라는 언어를 B라는 언어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 문장을 번역하려 해도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같은 텍스트여도 의뢰한 사람 또는 회사가 다르면 번역 결과물도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 PM은 원문 텍스트 이외에도 사전에 파악하여 번역사에게 전달해야 할 정보들이 많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장의 번역 결과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의뢰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쉽게 말하면, 번역된 텍스트가 어떤 상황에 쓰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알리는 소개 자료를 번역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정확히 번역해야 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외국 정부 기관에 제공하는 것인지, 외국인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것인지 그 목적에 따라 텍스트의 문체와 형식, 톤앤매너가 달라집니다. 번역사가 이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다면 실제 번역을 할 때 조금 더 상황에 맞는 용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모든 언어의 특징이니까요.
회사명과 인명 등의 고유명사 표기는 중요하면서도 매우 민감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의뢰인이 선호하는 방식 또는 늘 써왔던 표기 방식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확인하지 못한 채 임의로 번역을 진행할 경우, 번역된 결과물을 본 의뢰인은 자신의 생각 또는 경험과 달라 번역 자체가 엉망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과 '북경', '상하이'와 '상해', 사실 같은 말이지만, 회사 이름에 들어갈 경우 의뢰인이 항상 사용하는 방식으로 쓰지 않으면 고유 명사인 회사 이름을 잘못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의뢰인이 알아서 이런 부분까지 챙기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PM이 사전에 확인하여 번역사에게 전달해야 보다 수월하게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번역 형식은 교차 번역 여부를 말하는데, 교차 번역이란 문장 또는 문단 단위로 원문 뒤에 바로 번역문을 넣는 것을 말합니다. 교차 번역은 문장 단위로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또한 의뢰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사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교차 번역은 의뢰인이 원문과 번역문을 바로 이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번역 결과물의 분량이 길어지고 형식도 깨질 수 있어 전체적인 가독성에 영향을 준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의뢰인이 교차 번역 여부를 번역 작업 전에 요청하지 않고 결과물을 받은 후에 뒤늦게 교차 번역으로 수정을 요청할 경우 번역 회사와 번역사의 수고가 배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사실 참고 자료는 말 그대로 참고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번역 퀄리티나 이전 번역물과의 통일성을 생각한다면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번역 전문가가 아닌,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원문만 있으면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번역 회사가 의뢰인에게 먼저 요청하지 않는 이상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어도 제공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전에 확인만 하면,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기밀 자료가 아닌 이상 번역 결과물의 품질을 위해 대개 기꺼이 공유해 줍니다. 의뢰인 또는 업체 내부에 번역과 관련된 용어 리스트를 정리해 두었다면 이보다 좋은 참고 자료는 없겠죠.
번역의 품질은 전적으로 번역사의 역량에 달린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보와 자료 확보 싸움입니다. 그래서 이 자료 확보는 번역 PM이 의뢰인과 번역사 사이에서 자신의 역량과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번역 프로젝트에 있어, 얼마나 다양하고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진행 하느냐가 번역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어쩌면 의뢰인에게는 이런저런 질문들이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 품질 향상에 꼭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면 더 적극적인 정보 제공 뿐만 아니라 번역 회사에 대한 신뢰도도 한층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