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글의 기반이 되는 원문이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번역 역시 일종의 글쓰기 입니다.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읽는 사람에게 잘 읽히고 이해가 되어야 좋은 번역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할수록 이 글을 읽을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문학 번역에서는 역자가 독자를 위해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번역을 하여야 하는가, 즉 역자가 원문을 독자의 바로 앞까지 가져다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역자는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 해석 자체를 독자에게 넘길지(일명 ‘낯설게 하기’)를 둘러싼 논의가 줄곧 일어납니다. 여기에서는 이 부분은 일단 제쳐두고 일반적인 번역에서 보다 나은 번역 완성본을 위한 작업인 ‘윤문’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윤문이란 글을 윤색하는 것, 즉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말합니다. 초벌 번역과 번역사 자신의 감수를 거친 후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작업입니다. 어쨌든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문을 얼마나 정확히 잘 옮겼는지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초벌 번역과 감수 또는 검수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에 비해 윤문은 어쩌면 감수의 일부 이거나 급할 때는 미처 하지 못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감수 단계에서 하는 오역 체크와 교정, 교열은 비교적 눈에 잘 띄고 객관적인 실수이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고 완성도 있는 번역본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윤문은 보다 부수적인 작업이고 사람마다 자연스러운 글 내지는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문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지가 많이 개입됩니다. 실제로 번역사가 윤문을 했음에도 글이 매끄럽지 않다고 지적당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로 쓰일 나의 번역문을 생각한다면 감수 과정만큼이나 집중력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윤문입니다. 번역문의 윤문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저는 이런 방법을 씁니다.
감수 과정에 윤문도 같이 하면 놓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감수는 오탈자를 잡고 번역하는 내내 고민했던 용어를 확정 지어 통일하며 문법적으로 주어와 서술어, 조사 등의 사용이 적절한지를 살핍니다. 적절한 용어를 선택하고 바꾸는 과정에서 전체 문장의 분위기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을 윤문이라 생각해버리면 전체 문장의 밸런스를 보지 못하고 용어만 바꾸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한 번 더 가더라도 감수를 마치고 시간 내어 전체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 합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사는 같은 텍스트를 계속 보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것이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긴 작업으로 인해 집중력도 다소 떨어지고 일단 처음 텍스트를 접했을 때만큼의 흥미와 재미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윤문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다른 사람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술 번역의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면 더욱 좋겠죠. 그렇지 않은 일반 텍스트나 문학 텍스트라면 타인이 읽었을 때 매끄럽지 않은 부분과 어색한 부분을 잘 잡아냅니다. 물론 타인에게 일독을 부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기 때문에 금전적 사례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시간이 금’이라는 말이 더욱 와닿아요. 그만큼 타인이 나의 번역문을 위해 시간을 내주는 것에도 마땅한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대신 투자(?!)를 한 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타인이 주는 코멘트를 보면 내가 즐겨 쓰는 문장 구조가 어떤지 파악할 수 있고 습관 된 문장만 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 하는’이라는 말과 ‘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미묘하게 느껴지는 의미 차이 이외에 사람마다 더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바가 다릅니다. 이는 평소에 번역사 혼자서 볼 때는 자신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쪽만 사용하게 되는데, 타인의 피드백이 있을 경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당장 고치지는 않아도 향후 번역을 할 때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게 되고 어느 경우에 어느 쪽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죠.
종종 여유가 있을 때는 번역하기 전에도 쓰는 방법인데, 본격적인 번역이나 윤문을 하기 전에 번역문의 언어로 된 텍스트(남이 쓴 글)를 읽다가 하는 것입니다. 책도 좋고 기사도 좋습니다. 다른 텍스트를 읽다가 윤문을 하게 되면 방금 읽은 텍스트의 문장들이 배경지식이 되어 윤문을 할 때 기존 문장의 대안이 떠오릅니다. 물론 일이 많을 때는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번역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이렇게 해본 경험이 생기면 자신이 번역에 쓸 수 있는 문장력이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사실 윤문은 글 쓰는 재주와 더 가까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서량과 글을 쓴 경험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당장 윤문 실력이나 글 쓰는 실력이 상승할 만큼의 독서량을 채울 수는 없죠. 그 대신 번역 역시 일종의 글쓰기라 생각하고 귀찮지만 중요한 윤문을 습관화하면 더 나은 번역문을 완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